북핵사태에 대한 시각 둘
- Posted at 2006/10/10 15:33
- Filed under 세상 비추기
FTA 를 진행하는 노무현 정부를 반대하지만, 어쩔수없이 우리는 햇볕정책을 지지해야한다.
포스트 링크 : http://mediamob.co.kr/mediamob/article_ ··· %3D28921
쬐지도 못한 햇볕.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닦은 사람은 빌리 브란트라는 사민당 출신의 수상이었다. 그가 '동방정책' 이라는 방안을 수립해서 국회에 내놓았을 때의 일이다. 동방정책이란, 1980년대 후반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했던 북방정책과 비슷한데, 동유럽제국(諸國)과의 우호관계를 수립하여 동독과의 친분관계를 확립하고 장기적으로 동독과의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빌리 브란트가 이 정책을 국회에 내놓았을때 반대 정당이었던 기독교민주동맹. 현재의 기민당은 모든 의원이 반대했다. 단 한사람만 빼고.
바이체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공산주의에 접근하는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지지하고 이를 반대하던 기독교민주동맹 의원들을 혼자서 설득했다. 이 동방정책이 성공하더라도 스포트 라이트는 빌리 브란트 혼자 받게 될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도 동방정책은 폴란드 위령탑 위에 빌리 브란트가 무릎을 꿇는 모습으로 상징되었고, 독일은 이 동방정책을 기반으로해서 독일 통일에 성공하였다. 바이체커는 1984년 독일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 자리는 실권이 없는 명예직이었다. 그가 독일 패전 40주년이 되던 1985년에 했던 연설은 아직도 길이 길이 회자되는 명문이라고 한다. 바이체커는 그 연설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에 대한 뼈아픔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실 동방정책은 햇볕정책보다 쉬운 정책이다. 6.25 아아 어찌 그날을 우리가 잊으리로 시작하는 6.25노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던 곳에서 평화를 위한 손길은 누구나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바이체커가 말했듯이 과거에 대한 뼈아픔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6.25가 어찌 김일성만의 잘못이었는가. 1949년 부터 북진통일을 부르짖었던 노망난 노친네 이승만은 그럼 잘못이 없는건가? 나는 김일성이 저지른 그 패악들에 대해서 부정할 생각은 없고, 6.25의 책임을 묻자면 궁극적으로는 김일성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이승만이 저질렀던 권력욕에 의한 한국민들의 무참한 희생들도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은 북한만의 잘못이 아닌. 한민족 모두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6.25를 무조건적으로 김일성의 잘못으로 생각한다. 과거에 대한 뼈아픔을 잊지 않은 것은 장하지만 잘못 기억한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우월심과 억울하지 않은 억울함은 박정희 전두환을 비롯한 권력층들과 동북아 다른 국가들에게 항상 이익만을 줄 뿐이었다. 그때를 살아간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가장 뼈아픈 잘못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햇볕정책은 이러한 '부채'와 '뼈아픔'에 대해서 벗어나고자 하는 첫번째 시도였다. 언제까지나 복수와 보복으로 점철되는 그러한 세계에서 한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살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70이 넘은 고령의 대통령이 다리를 질질 끌면서 북한으로 넘어간 것은 그 정치적 의도를 제외하고서라도 마땅히 축복받아야 할 것이며, 감탄하고 우리 모두가 지원해야할 그런 일들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바이체커는 없었다.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을 거치면서 DJ의 실수들이 겹친 문제가 있긴 있었지만,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퍼주기 논란을 계속했고, 그 지원양이 자신들의 정부였던 김영삼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북한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노친네로 전락해 버렸다. 그들의 그러한 권력욕은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음해공작에서 절정을 기록했다. 노 정치인에 대한 예의는 간데없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미친것들의 장난질들만 남았다. 아무리 DJ에게 한나라당이 뒤통수를 맞았다지만, 이건 너무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2000년. 미 클린턴 대통령은 조명록 차수와 올브라이트간의 양자회담을 성사시켰다. 레임덕이 임박한 상황에서 클린턴은 한반도에 평화정착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북한에 가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한다. 올브라이트가 평양으로 건너갔고, 클린턴이 북한으로 가기위한 내부협의가 진행되던 도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내전이 일어났고,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대법원이 대통령을 결정하는 웃기지도 않는 사태를 거쳐서 조지 부시. 그 또라이가 대통령이 되었다. 바람둥이에다가 멋만 부리는 표퓰리스트 클린턴이었지만 그래도 부시보다 머리가 좋았던 그였기에 햇볕정책은 2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정적인 순간에 좌절되었다. 클린턴은 마지막 순간까지 조지 부시에게 북한과의 평화협상을 중요시하고, 핵무장 포기 댓가로 약속한 중유제공을 꼭 이행하라고 설득했지만 미스터 김정일을 악으로 봤던 또라이는 그냥 고개를 저어버렸을 뿐이었다.
햇별정책은 사실상 그순간에 좌절되었다. 김대중이. 그리고 노무현이 북한에게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 무슨 이익을 갖다 주었는가. 햇볕은 쬐어지지도 않은채 다시 강한 삭풍이 불어왔다. 그와중에 북한에게 외투를 벗어제끼라고 하는 건, 그건 북한을 두번 죽이는 짓이다. 중유제공을 거부하면서 무조건적인 핵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조지 부시에게 북한의 김정일이 무슨 생각을 가졌겠는가. 2003년 벌어진 제 2차 핵사태는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주절거림처럼 퍼주기에 대한 댓가가 아닌. 미국의 쪼잔함에 대한 북한의 자존심 표출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노무현은 어찌 어찌해서 6자회담을 만들어냈고 북한을 어르고 달래서 9.19공동선언을 만들어냈다. 전력공급이라는 걸 가지고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다시 한번 퍼주기라고 광분들을 해댔지만, 9.19선언이 무너지면 그리고6자회담이 무너지면 바로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어낼 기세였다. 동생 잘못 둔 형의 죄치곤 가벼운 편이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그들에겐. 아니 정권획득을 위해서 탄핵까지 서슴치 않았던 그들의 눈에는 그것마저 마뜩찮아나 보다.
9.19선언 직후 미국은 느닷없이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다. 북한이 미국의 경제제재를 보면서 뒤통수를 맞았다. 라고 생각하는 건 동네 양아치들이라도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재무부의 단독행사였다지만 부시의 행위는 강대국 답지 않은 치졸함을 넘어서서 폭력적이었다.
그리고 오늘
북한이 핵시험을했단다.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 난리다.
그리고 조중동. 한나라당은 퍼주기 논란에 다시 가세했다.
인터넷 여기저기에서는 노무현을 욕하고. 시멘트를 갖다준 그의 행위에 대해서 별별 욕이 들어간다.
노무현이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1994년 전쟁 일보직전까지 평화선전을 해댔던 것들이 누구며.
1994년 김일성 사망당시 조문단 문제를 일으켜서 대북관계의 냉색을 불러일으킨건 누구며,
2000년 노벨평화상 사재기 논란을 일으킨 것들은 누구며.
2001년 부시 집권이후 노골적으로 좋아하던 것들은 누구며
2002년 서해교전의 그 씻을수 없는 대통령의 죄악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기들은 안간것들은 누구며,
2003년 대북 송금 특검을 가지고 대통령 탄핵을 운운하던 것들은 누구며
2004년 9.19공동선언을 싸잡아 비판하던 것들은 누구며
그리고 오늘
내각 총사퇴를 운운하는 것들은 누구인가.
2006년 10월 9일 한글날.
오늘 소위 보수라는 작자들의 현실을 나는 본다. 같잖은 도덕적 우월감 하나를 가지면서 여차하면 미국으로 나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들.
북한이 오늘 이렇게 된건
팔할이 우리나라에 바이체커가 없어서다.
글쓴이 : 마르세리안
Posted by Mr Blu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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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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