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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칼럼] 진보정치에 대한 예의

아...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 대한 홍세화 아저씨의 얘기는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허나 귀에 못이 박힐정도로 들었음에도 나도 흔들렸고 또한 뚜렸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주변에 존재를 배반하는 선택을 하는 예를 많이 본다.

문국현에게 흔들리는 사람에게 홍세화 아저씨의 글을 추천한다.

원본 링크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41702.html
[홍세화칼럼] 진보정치에 대한 예의

20:80으로 양극화된 사회는 다수인 ‘80’이 소수인 ‘20’에게 지배당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민주주의 제도에선 당연히 ‘80’이 지배해야 맞다. 더욱이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들과 달리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민주주의를 신봉하며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는 누구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더욱 ‘80’이 지배해야 맞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20:80의 불평등, 대중의 궁핍화는 완화되기는커녕 시장만능주의, 승자독식으로 15:85, 10:90으로 치달으면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모순은 ‘80’의 대부분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처지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의 말을 빌리면, 강남 사람들은 철저하게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데 반해 강북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가령 ‘조중동’이 ‘20’의 이익을 대변하여 ‘세금폭탄론’을 제기할 때 세금 낼 것도 없는 ‘80’에 속한 사람들도 이에 부화뇌동한다.

‘80’의 이와 같은 자기 배반은 물론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것처럼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그들이 장악한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지배이념을 끊임없이 유포함으로써 대중의 의식을 통제하고 조작한다. 그 결과 피지배계급의 자기 배반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남다른 것은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또 다른 명제가 오로지 ‘20’에게만 적용될 뿐이고 ‘80’에게는 적용되지 않음으로써 노동자들 대부분이 반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을 만큼 ‘80’의 자기 배반의 정도가 아주 심하다는 점이다. 이는 분단 상황이 부른 굴레인 게 분명하다.

새삼스레 정치학 원론에서 나올 만한 얘기를 길게 한 것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처지’와 ‘의식’ 사이의 괴리가 낳은 정치세력 지형의 왜곡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우편향, 취약한 진보정치세력, 이른바 보수정치세력이 주로 보수를 참칭한 수구세력인 점, 그러한 보수의 대칭 세력을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게 된 점, 이 모든 게 대중의 처지와 의식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집권한 뒤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양산,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대중의 처지’를 배반하는 정책을 펼친 세력까지 ‘진보개혁세력’에 포함시킨다면, 그것은 ‘대중의 처지’가 아닌 ‘대중의 자기 배반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진보정치는 당연히 ‘대중의 처지’를 개선시키는 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 어려움은 대중이 자기 배반 의식으로 진보정치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는 점이다.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비판적 지지론이 대두되고 있다. 본디 올바른 지지 형태는 비판적 지지이지만 한국에서 사용되는 비판적 지지는 왜곡된 의미를 갖는다. 솔직히 말해,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는 것은 한나라당 후보를 미는 결과를 가져오니 문국현씨가 포함된 범여권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삼진아웃’ 시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대중이 자기 배반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스스로 물어야 하며, 대중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적어도 비정규직법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같은 진보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없이 비지론을 주장하는 것은 대중의 자기 배반 의식 위에 군림하겠다는 권력의지 표명과 다를 바 없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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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 Blue Sky

2007/10/16 13:47 2007/10/16 13:47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선거를 보며..

어제 민주노동당 선거를 3시 57분에 겨우 했다. 이리저리 미뤄놓다가 겨우 한 것이다. 쪽팔리게시리..
선거결과 권영길후보는 49%라는 과반을 겨우 못미치는 결과가 나왔고, 일주일후의 결선투표가 기다리고 있다.
먼저 나의 투표의 향방은 언급하지 않겠다.

이번선거를 냉정히 '대충 보기'에는 권후보와 노후보는 상호간의 출혈경쟁으로 자신의 표를 깍아먹은 것 같고, 심후보는 그 틈바구니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를 지킨것 같다.

어떤 선거든 네가티브라는 것은 언제나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자신에게도 돌아오는 여파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네가티브란 것이 첨엔 달고 달지만, 좀만 빨다보면 쓰디 쓰다.

이번 선거에도 우연찮게 네가티브의 선거의 면모를 조금 접해버렸다.
예를 들면, 이건 뭐 논리적인 부분은 아니고, A, B에 신뢰를 보내는 상황하에서..
"A가 잘못했고, B가 A의 잘못을 비판이 아닌 비난했을 경우 A가 잘못했더"라도,
사실 A,B의 신뢰감은 같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에 대한 신뢰와 낙/당선했던 후보자들에 대한 신뢰는 선거결과와 관계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 전에는 그들 하나하나 우리가 그렇게도 무한한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 아닌가?

15일 선거를 기점으로 '심'이되든, '권'이되든 하나의 대통령후보를 중심으로 총력을 다하자.

ps. 근래에 어떤 술자리에서 들었던 얘기였는데, 한가지 짚고 싶어서 언급한다.

한 친구가 '다수정파'가 95~7년부터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에 힘을 주었다라고 말했다.
정확히 언급컨데, 소위 "'다수정파'의 큰갈래"는 2003~4년도까지 민주노동당을 지지 하지 않았다. 96년도 부터 어떤 "'다수정파'의 일부갈래"만이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에 관해 넓은 연대를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다수정파'의 큰갈래"는 2003~4년도까지도 어떠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대해 어떠한 견해도 없었으며... 그들에게 각종 선거와 민생현안의 대안을 이런식의 비판적지지로 계속해야겠느냐 질문하면, 그들은 심한 표현으로 'XX'라고도 듣곤했던게 96~99였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서야 가끔씩 당에서 본다는 것이 한편으론 그들도 변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론 그들이 변했을까 라는 궁금함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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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 Blue Sky

2007/09/11 00:52 2007/09/1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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