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사님의 멋진 노래..."우리가 할 일은 #$@%$#@"
- Posted at 2008/03/09 22:03
- Filed under 세상 비추기
Posted by Mr Blu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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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 Blue Sky
원본 링크 : 가난한 사람들은 왜 부자를 위해 투표하나
요컨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책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유함이나 풍요로움 같은 부자의 가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함께 수반돼 연상되는 보수적 언어를 ‘옳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누가 혹은 어떤 정당이 서민을 대변하고 말고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부자를 보며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성공신화에 매료될 뿐이다. 부와 이익이라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긍정적 에너지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적지 않은 부자들이 적당한 부패와 조작과 위장을 즐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는 않는다. 그저 부자라면 그 정도는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훌륭하게 입신에 성공한 저 부자들은 그만한 권리와 폭력을 응당 행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것은 단순한 존경이나 예우와 다르다. 겨우 존경심 때문에 사익과 반대되는 선택을 할 정도로 인간의 두뇌가 간단하지는 않다. 그건 우리가 여태 태어나서 자라고 배우고 번식하고 경쟁하고 버티고 버텨 살아온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언어의 토대 위에 건설된 탓이다. 사람들은 부자 - 성공 - 상위 3퍼센트 - 대기업 - 수출 - 재벌 - 시장주의 같은 단어들에서 긍정적 에너지를 느낀다. 반대로 복지 - 중소기업 - 88만원 세대 - 분양원가공개 등에선 무언가를 박탈당하는 듯한 상실감 따위의 부정적 에너지를 느낀다. 시장주의에 반대되는 입장을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단어가 고작 '반시장주의'다. 세상에, 얼마나 부정적인가. 그 내밀한 사정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사람들은 보수적인 단어와 인식의 틀 위에서 살아왔다. 보수성을 ‘궁극적으로 안전하고 탄탄한‘ 것으로 인식한다.
.. 중략 ..현실 정치에서 진보진영이 얼마나 그릇된 전략에 따라 움직이고 있느냐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안티 담론에 의해 움직이다간 결코 긍정적인 이미지의 틀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 기껏해야 상대하기 피곤한 사람 취급 밖에 받을 수 없다. 그런데도 진보진영은 도덕의 황폐화를 부르짖고 세상이 당장 망할 것처럼 시일야방성대곡을 목 놓아 불렀다. 유동적인 중간층은 서슬 퍼런 진보진영의 손을 들어주기 힘들어진다. 도무지 안정적인 비전을 제시할 그룹으로 비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보수진영에선 진보진영의 언어를 가져다가 잘 활용했다. 이회창 후보가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천민자본주의, 이거 안 됩니다”라고 말했을 때,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이를 두고 술자리 안주삼아 실컷 비웃었다. 하지만 언어의 힘이란 무섭다. 불안정한 진보주의자보다는 안정적인 보수주의자의 개혁적 언동에 솔깃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명박 후보도 ‘청년 실업’이나 ‘비정규직 문제’ 같은 진보진영의 화두를 고스란히 가져가 자기 언어로 흡수해버렸다. 진보진영은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속수무책이었다.
진보진영의 선동가와 계몽주의자들은 스스로 판 무덤 속에 기어들어갔다. 여기서 탈출하고 싶다면 보다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대중에게 꾸준히 진실을 알리고 보수진영의 부조리를 밝힘으로써 마침내 상식이 통하게 될 것이라 낙관하는 자세는 금물이다. 그 진실은 진보진영에게만 들리는 진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틀에 의해 판단한다. 이 틀은 그들의 세계관이고 가치관이다. 이 가치관은 주머니 사정과 별개로 작동한다. 상식을 운운하면 반감만 산다. 보수진영의 움직임에 일일이 대응하는 방식으로 무게중심을 가져가다간 결코 집권할 수 없다. 대중이 어떻게 진보의 언어에 관심을 기울일 것인지 연구해야 한다. 그런 관심 안에서 진보의 가치관과 인식의 틀이 보수의 그것 못지않은 안정적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진보진영이 입에 문 언어들이 닮고 싶고 갖고 싶고 추구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다소간의 패션화 전략도 필요하다. 진보의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한국의 진보진영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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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링크 : 짱돌로 국가를 내리찍자
'국가'는 근본적으로 소수의 자본가들만을 위해 존재한다. 재벌, 대기업으로 대표되는 자본이
만들어내는 이윤이 국가의 물적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 국가는 다양한 제도적, 문화적 장치를 이용해서 끊임 없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킨다.
사법체계가 그 대표적인 예로서, 국가가 공권력을 사용하면서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법질서는 바로 자본의 노동자 착취를 통한 이윤추구 활동의 제도적 기반이 된다. (국가의 사법체계가 모든 사적 이해관계를 떠나 진정으로 공동체의 건전한 질서 유지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은 비자금 조성으로 고발된 현대 정몽구와 보복 폭력행위로 구속된 한화의 김승연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는 삼성의 전방위적 위법사례들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수사는 안 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사례 등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즉, 국가가 수호하는 법은 기업의 경영활동에 결정적 장애가 되지 않는 한에서만 '엄격하게' 적용된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 혹은 '국민의 복리를 목적으로 한 도구로서의 국가'라는 환상 역시 국가지배에 대한 인민들의 동의를 무의식적으로 강제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따라서 반드시 극복해야할 기만이다.
국가는, 국제적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소수 대기업의 이익을 마치 국민 전체의 이익으로 호도하며 한미FTA를 추진하고 있고, 이윤율의 구조적 저하의 상황에서 자본의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채택된 비정규직제를 마치 21세기 경제가 구조적으로 요구하는 필수적인 제도로 당연시한다. 또한 중동의 '기름밭'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윤에 눈이 먼 지극히 기업가적인 시각으로 미국의 더러운 전쟁에 동참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국가는 오직 자본의 이윤확보에만 복무할 뿐인 한미FTA, 비정규직, 이라크파병 모두 '국민경제'라는 허상을 명분으로 추진하고 있다. '자본가의 집행위원회'에 불과할 뿐인 국가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민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거리로 나와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고" 국가에 시비를 거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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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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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링크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41702.html
[홍세화칼럼] 진보정치에 대한 예의
20:80으로 양극화된 사회는 다수인 ‘80’이 소수인 ‘20’에게 지배당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민주주의 제도에선 당연히 ‘80’이 지배해야 맞다. 더욱이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들과 달리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민주주의를 신봉하며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는 누구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더욱 ‘80’이 지배해야 맞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20:80의 불평등, 대중의 궁핍화는 완화되기는커녕 시장만능주의, 승자독식으로 15:85, 10:90으로 치달으면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모순은 ‘80’의 대부분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처지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의 말을 빌리면, 강남 사람들은 철저하게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데 반해 강북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가령 ‘조중동’이 ‘20’의 이익을 대변하여 ‘세금폭탄론’을 제기할 때 세금 낼 것도 없는 ‘80’에 속한 사람들도 이에 부화뇌동한다.
‘80’의 이와 같은 자기 배반은 물론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것처럼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그들이 장악한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지배이념을 끊임없이 유포함으로써 대중의 의식을 통제하고 조작한다. 그 결과 피지배계급의 자기 배반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남다른 것은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또 다른 명제가 오로지 ‘20’에게만 적용될 뿐이고 ‘80’에게는 적용되지 않음으로써 노동자들 대부분이 반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을 만큼 ‘80’의 자기 배반의 정도가 아주 심하다는 점이다. 이는 분단 상황이 부른 굴레인 게 분명하다.
새삼스레 정치학 원론에서 나올 만한 얘기를 길게 한 것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처지’와 ‘의식’ 사이의 괴리가 낳은 정치세력 지형의 왜곡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우편향, 취약한 진보정치세력, 이른바 보수정치세력이 주로 보수를 참칭한 수구세력인 점, 그러한 보수의 대칭 세력을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게 된 점, 이 모든 게 대중의 처지와 의식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집권한 뒤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양산,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대중의 처지’를 배반하는 정책을 펼친 세력까지 ‘진보개혁세력’에 포함시킨다면, 그것은 ‘대중의 처지’가 아닌 ‘대중의 자기 배반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진보정치는 당연히 ‘대중의 처지’를 개선시키는 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 어려움은 대중이 자기 배반 의식으로 진보정치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는 점이다.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비판적 지지론이 대두되고 있다. 본디 올바른 지지 형태는 비판적 지지이지만 한국에서 사용되는 비판적 지지는 왜곡된 의미를 갖는다. 솔직히 말해,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는 것은 한나라당 후보를 미는 결과를 가져오니 문국현씨가 포함된 범여권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삼진아웃’ 시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대중이 자기 배반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스스로 물어야 하며, 대중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적어도 비정규직법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같은 진보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없이 비지론을 주장하는 것은 대중의 자기 배반 의식 위에 군림하겠다는 권력의지 표명과 다를 바 없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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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링크 : http://blog.chulgoo.com/index.php?pl=582
그러니까...
이명박 후보 50% 지지율에 대한 의문을 첫번째. 속상한 버전으로 얘기하자면,
국민은 자기 수준의 지도자를 갖는다는 말.
우리들 수준이 그 정도라는 얘기고, 이건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증명된다.
착한 일 많이 하기로 소문난 개그맨 정준하가 알고 보니 단란주점 사장이었던 사건. 바지 사장이건 뭐건 간에 그는 그 곳이 접대부를 고용하는 업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기부를 많이 하는 정준하와 접대부 업소의 사장 정준하 사이에서 오는 괴리. 이게 딱 우리 수준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 대해 뭐라고 나무라는 우리와 우리가 사는 동네 어귀까지 들어선 수많은 안마시술소 간판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는 우리 사이의 괴리. 이게 딱 우리 수준이다.
그리고 일등기업 삼성과 노동3권 조차 인정하지 않는 삼성의 괴리. 이게 딱 우리 수준인 거다.
이 속상한 버전은 더 끔찍해진다. 자본이 미디어를 장악하면서 민중은 각성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현실을 갉아먹는 자신의 인식을 바로 잡을 기회까지 고스란히 놓치고 만다. 인식을 재구성할 교육은 그리고 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결론은.
직업은 노가다, 세계관은 사장님.
계급을 배반하는 인식을 지닌 채로 살아가게 되는 우리의 모습은 스포츠와 연예 사업에 포위된 미국의 민중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인종차별을 겪고 있는 미국을, 미국인들 자신은 '선진국'이라 믿고 있다. 한미 FTA는 그래서 더 무섭다.
이제 이명박 50% 지지도의 의문에 관한 꿋꿋한 버전.
천재지변을 감지하는 동물들이 있다. 그들은 앞으로 닥칠 재앙을 미리 느끼고 그에 대해 준비한다. 이건 어떤 훈련이나 교육에 의한 게 아닌 본능이다.
민중의 본능 또한 천재지변을 감지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지표상의 경제를 살리기는 했지만 민중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특징은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생략한 채 그냥 세계화의 특징이라며 감내해야 했다.
성장은 계속되지만 고용은 없고, 이익은 늘어나지만 투자는 없다. 이건 경제정책이 잘못된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원하는 결과다.
그리고 민중은 지난 십년간 이 흐름이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릴지 느끼고 있다. 분석과 훈련,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에서 피부로 체감하는 본능으로.
물론 이명박이 그런 민중의 삶을 구원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건 이명박 지지 50%의 비밀은 지난 십년을 어렵게 걸어온 민중의 위기의식이다. 결국 민중은 언제나 자신의 현실을 깨뜨리고 재구성하는 본능이 있고, 그로써 역사는 나아간다.
속상한 버전과 꿋꿋한 버전.
예전 같았으면 꿋꿋한 버전을 답이라 들겠는데, 요즘 같아선 속상한 버전이 답인 듯하다.
그럼에도 마음 속 한 구석에서 떠오르는 단어.
"하지만..."
Posted by Mr Blue Sky
언제나 우리의 싸움이 '권력자 vs 저항자'라는 공식안에서 행해졌다. 나는 가끔식 그 공식이 '불변', 혹은 악용되지 않을까에 대해 가끔식 고민했었다. 약자가 강자에 대항하는 어떤 감정적인 선입견을 만들어주는 논리가 요즘에는 너무 흔해졌던것도 사실인갑다.
다음과 같은 글은 왜 한나라당이 약자의 이미지를 일반대중들에게 투영했는지, 왜 열린우리당이 엄살을 떨었는지, 왜 마초 찌질이들이 익명성으로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지, 디워 추종자들이 평론가 한 개인에게 다구리를 떴는지 말해주는 글이다.
원본 링크 : 잠시 곁다리. 권력자 vs. 저항자라는 구도의 싸움
오랫동안 (악하고 강력한) 권력자 vs. (정의롭고 약한) 저항자라는 구도의 싸움은 군부의 장기독재가 있었던 한국에서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오랫동안 '참'이었던 이 구도는 그 장기독재가 무너진 후, 저마다 자신이 선이고 자신이 정의로운 저항자들이라 우기는 사람들에 의해 실제 현실과 상관없이 무수히도 많이 반복, 재현되었다. 그래 최초로 '야당' 자리로 밀려난 한나라당 놈들도 써먹고, 과반수 의석을 얻어 거대 여당이 된 당의 지지자들도 써먹는 공식이 되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혹은 아주 일부만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대립구도를 펴면서 저쪽은 강하고 악한 권력자, 이쪽은 약하고 정의로운 저항자라며 포장을 해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오랫동안의 저 구도의 싸움에서 '약자는 무조건 상대적으로 선하다'라는 착각이 여기에 곁들여지는데, 약자는 언제까지나 약자이기만 하지 않다. 여성은 남성에게 약자이지만 비장애인 여성은 장애인 남성에게 기득권자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장애인 남성이 비장애인 여성보다 기득권자일 수 있다. (나는 내가 김대중 전대통령보다 기득권자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소수의 권력자에게 약자일 수 있지만, 한 개인에게 있어 당연히 강자일 수 있다.(물론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소수이고 불의의 권력에 대항하는 저항자라고 포장한다. 한나라당 떨거지들 역시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가진 자와 그 일당에 저항하는 저항자라고 포장한다. 일개인에게 폭격을 가하면서도 '대중'은, 상대는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는 문화권력을 가진 자(그가 그저 학생이든 아마추어 리뷰어건 정말 기자건 평론가건)이고 자신은 그런 글 못 쓰고 그저 '악플'이나 달 수 있을 뿐인 약자라고 우긴다. ('악플'만 쓸 수 있는 것인가, '악플'만 쓰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평소엔 멀쩡한 글을 잘 쓰지만 그 순간엔 얼굴을 숨기고 '악플'을 쓰고 싶은 것인가?) 이 구도를 아무데다 써먹으면서 자신을 정의롭고 약한 저항자로 포장하려면, 상대를 악하고 강력한 권력자 내지 기득권자라고 우길 수밖에 없으렷다.그리하여 어떤 일까지 벌어지냐 하면, 평소 페미니즘에 대해 글을 써온 여자블로거에게 단체로 몰려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어성폭력을 포함한 사이버테러를 가해놓고는 그 페미니스트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호소하자, 그들은 이런 논리를 내세운다. "그 페미니스트는 평소에 글을 잘 쓴다고 두루 인정받았던 문화권력을 가진 자이며 그 권력을 이용해 불특정 다수의 약한 남성들을 상대로 폭력을 가하며 탄압을 해왔고 그렇기에 대중 남성들은 그 탄압에 저항한 것일 뿐이다, 그 페미니스트는 평소에 자신의 글실력으로 추종자들을 여럿 만들어 나와바리를 관리하고 있었다. 기타 등등" 일명 '권력자인 그 페미니스트의 선빵론'이다. 내가 김규항의 글이 특히 불쾌해 했던 이유는 실제로 있었던 그 일이 그만 떠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블로그에 와서 글에 공감해주는 사람 하나를 보며 그저 기분 좋아하던 그 페미니스트는 졸지에 그 사이트를 좌지우지하는 나와바리의 수괴가 되어 불특정 다수의 약한 이들을 글쓰는 권력으로 괴롭히다가 자신이 어떤 불편에 처하자 돌연히 피해자로 호소하는 위선적이고 가증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그 후 그 페미니스트는 자신이 정말 그렇게 글을 잘 쓰는 문화권력을 많이 가진 자가 아닐까 잠시 착각에 빠졌다고 한다.
성실하게 글로 소통하는 사람에게 악플로 대응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저 자는 글을 잘 쓰는 권력자요 나는 이런 찌질거림밖에 못 하는 약자이니 이 방법밖에 없다고 변명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평소에 멀쩡하게 글 잘 쓰다가 이런 때에만 그 '대중'에 합류하며 약자요,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다수 섞여들어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지 않는다.) 개뿔 권력 없는 사람들끼리 권력이 아닌 문제로 싸우면서 상대가 권력자고 나는 거기에 대항하는 의로운 저항자라는 구도를 만들어 버리는 그 지나치게 정치적인(혹은 찌질한?) 센스... 내가 '대중'이란 주제로 이러저러하게 생각을 해보기 시작하고 블로그에 끼적거리기 시작한 것 결정적인 계기도 바로 이런 것이다. 블로거들끼리 글 주고받고 싸우면서 자신이 말 막히면 먹물에 대한 혐오감을 내비치며 순식간에 상대를 지식인, 먹물로 상정하고 자신은 일개 (무식한) 블로거 내지 대중을 자처하는 것. 나는 도대체 왜 개인 한 명인 그가 '대중'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이것은 과거 여러 곳에서 두루 겪어봤던 일이고 이번 <디워> 사태에서도 반복되었다.
Posted by Mr Blu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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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매를 맞는 현대자 노조, 자 우리는 어디에 서겠는가?
원본글 : http://www.mediamob.co.kr/mediamob/arti ··· %3D33990
당신의 줄은 어디입니까?
가슴에 돋는 칼 | 2007-01-16 01:53
현대차노조 파업을 두고 전 방위적 집단이지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균형감각을 유지해 오는듯 싶던 MBC논평에서조차 "100%받아 처먹었으면 되자나! 50% 더 받아 처먹을려고 파업을 하냐! 도요타를 봐라! 경제도 어려운데 니들 언제까지 그렇게 불법파업하려고 하냐!"라고 말합니다.
신문의 활자는 노조귀신을 잡겠다는 망나니들이 이리저리 뛰며 칼을 휘두르고 있고 방송사의 카메라는 텅빈 항구를 찾아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낀 상황을 이미지화합니다. 늘상 "제3자 개입금지!"를 외쳐대던 경제5단체에서 몰려나와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협력업체 사장들도 나와 "니들때문에 우리 다 죽게 생겼다!"라고 외칩니다.
총체적인 마녀사냥이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진행중입니다. 노조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던 많은 이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대관절 어떤 정상적인 사회가 특정기업노조의 파업에 대해 이토록 갈아마시지 못해 안달이 날 수 있을까요? 정치투쟁하지 말고 임금투쟁이나 열심히 하라던 존재들이 임금투쟁한다는데 왜 이리도 게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걸까요?
최근 지방분권문제의 핵심이니 수도권규제완화와 상수원보호문제의 구심이니 떠들고 있는 하이닉스라는 악덕기업에서 정규직들에게 연말상여금으로 1인당 평균 1천만원씩을 주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남겼다면 성과급을 주는 것은 당연한 거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미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대부분이 생산,유틸리티분야인)노동자들에게는 성과급이 한푼도 돌아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미 노조만들려다 3년째 거리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을 목격한바 있는 비정규직들은 그저 '일자리라도 만들어준 회사'에 감지덕지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 소속인 정규직노조는 당연하다는 듯 비정규직 성과급 미지급문제에 대해 생까고 있습니다.
하이닉스 임원들은 수억원씩을 챙겼다고 하는군요.
다시 현대차문제로 돌아옵시다.
현대차노동자들은 이미 작년 몇차례의 파업(전면적인 파업이 아니었다 하더라도)을 통해 상당부분 제 임금을 손해봤습니다.
현장에서도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올법도 합니다.
그런데 연말 경영평가를 통해 이익을 남긴만큼 성과급을 분배하는 단계에서 임원들은 수억원씩을 이미 받아 챙겼음에도, 알량한 그것도 생산량에 근접하면 주겠다는 약속을 해 놓고 3% 미달했다는 수치를 들이밀며 "이제부터는 회사에서 정해 놓은 할당량을 못 채우면 돈 더 안 준다! 그러니 알아서 기어!"라고 노동자들을 길들이고 있는 겁니다.
연일 언론에서는 연봉 6천만원짜리 귀족노조가 기업의 고혈을 빨아먹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처럼 묘사를 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가요?
현대차와 임금격차가 거의 없는 기아차 아산공장에서 일하는 18년 된 친구녀석의 급여봉투를 보니 잔업 과 특근을 빼고 180만원이 찍힙니다.
18년을, 그것도 대기업이라는 곳에서 근골격계와 온갖 잔병에 시달리며 피땀을 흘려온 노동자의 월급입니다.
그것마저도 많아 보입니까?
현대차노조는 그나마 비정규직노조도 차별없이 성과급을 지급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고 성사시켰습니다. 현대차 임원이 기업이 이익을 낸 만큼 수억에서 수십억씩을 연말성과급이랍시고 챙겨 갔는데 노동자들이 "주기로 했던 성과급만이라도 내 놓으라"는게 그리도 배가 아프고 이가 갈릴 정도로 분노할만한 내용인가요?
노조원들은 이번 파업을 통해 성과급을 받는다 해도 무노동무임금만큼 삭감되는 임금을 감안한다면 현실적으로는 무의미한 투쟁일수도 있는 파업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전 대기업노동자와 대기업노조를 일방적으로 두둔하지 않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만따나 늘상 정신 못차리는 변질된 대기업노동자의 인식과 노조의 관성에 일침을 가해 왔습니다.
그런데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옆에서 일하던 녀석만 연말에 상여급이라며 단돈 10만원을 받았다며 봉투를 흔들어도 속이 쓰린 판국에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한푼도 받지 못한 이들에게 "니들은 하류인생이자나!"라고 회사와 함께 손가락질을 해대는 썩은 정규직노조도 있고,
임원들에게는 수억에서 수십억씩을 챙겨주면서도 노동자들에게는 "몇십만원 더 못준다! 어차피 언론이고 정부고 니들과 똑같이 일해서 월급 받아먹는 노동자넘들도 다 우리 편이다!" "심지어 법원도 우리 편이다! 볼래?"하며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사측도 있습니다.
당신이 서야 할 라인은 어디입니까?
전가의 보도처럼 민형사상 손배소를 휘두르고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측의 뒤꽁무니인 겁니까?
현대차노조를 지지하라고 부탁하지는 않겠습니다.
보수언론과 정부와 경제계에서야 뭐라고 짖어대던 그냥 각자 할 일 하면 됩니다.
현대차수출이 완전히 중단된들 해외공장에서 만들어질 것이고, 재고처리하면 될 일이고, 현대차와 직간접적으로 엮이지 않은 이상 피해볼 일 없습니다.
내 돈 써가며 '헌법적 권리인 파업'하겠다는 노동자들에게 적어도 자본과 보수기득권의 논리로 함께 들개노릇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저들이 또다시 그들이 속한 기업의 권력뿐만이 아닌 "애국심과 국가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임을 뼈 속 깊이 각인하고 살아라!"라고 외쳐대는 '주인'들에 의해 길들여진 같은 노동자들에 의해 짖밟히고 좌절하고 만다면 더이상 대한민국 땅덩어리에서 '파업의 정당성'은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마는 겁니다.
가물면 가물다고..., 80년대 이후 경기가 좋았던 적이 한번도 없는, 그러나 해마다 성장은 해 온 이상한 나라에서 한낱 노동자가 국가안위와 경제성장을 걱정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파업따위를 벌이는 짓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인 겁니다.
노동자의 권리와 가치가 바닥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권리와 가치입니다.
Posted by Mr Blue 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