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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이런 연예인은 없을까? ^^ (미국 드라마 House M.D. 의 주인공 Hugh Lau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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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 Blue Sky

2008/03/09 22:03 2008/03/09 22:03

왜 학생 운동 힘들어지는가?

안타깝게도 2000년도 초반부터 지금까지 학생운동은 둔화 및 퇴화과정을 겪고 있고, 그와 동반해 청년운동도 쉬운 환경도 아니다. 다음의 글은 "왜 학생 운동 조직은 20대로부터 멀어졌나?" 라는 글인데, 지금의 학생/청년 운동의 경향성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95, 96년도 등록금을 투쟁을 위시한 교육투쟁이 후면으로 밀려나면서, 대중성을 잃어갔던 학생운동의 경험을 돌이켜 본다.
링크 : http://yhhan.tistory.com/entry/%ec%99%9 ··· 582%2598

왜 학생 운동 조직은 20대로부터 멀어졌나?
- 한윤형

쉽지 않은 얘기다.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자칫하면 ‘탓’ 공방이 되기가 쉽다. 사회구조를 통한 접근이나 20대 자질론 양쪽 다 그렇다. 그래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대한민국 성립 이후 한국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진 방식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국대사관의 문정관으로 근무하던 그레고리 핸더슨이란 사람은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중앙정치의 과잉현상을 ‘소용돌이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회사, 조합, 교회, 우애단체 등 시민사회의 성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개인과 국가 간의 중간 단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 구조에서 중앙 정치가 아무런 여과 없이 개인을 대량으로 동원했던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 중앙 정치는 생활세계의 이슈를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화라는 화두가 사람들의 정치의식을 지배할 때조차 상황은 그러했다. 민주화 이후 사람들은 정치에서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지역주의라든가 삼김이라는 상징을 만들게 되었다. 지금의 20대는 그러한 ‘소용돌이의 정치’가 자신의 삶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한 최초의 세대라 볼 수 있다. 어려운 문제는 그것 이외에 다른 종류의 정치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20대뿐 아니라 다른 세대도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가지고 있지 않다.

‘소용돌이의 정치’의 세계에서 대학생들이 일정한 영역을 차지했던 이유는 쉽게 추론될 수 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 자체가 일종의 특권신분, 엘리트로 받아들여졌고, 비교적 모임을 쉽게 조직할 수 있었다. 그런 대학생들에게 사회가 하나의 역할을 부여했다. 마르크스가 먹고 살만 하고 조직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대공장 노동자들에게서 혁명의 희망을 보았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런 대학생들의 역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념적인 측면에선 80년대 운동권을 지배했던 이념인 NLPDR이 사회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고, 문화적인 면에서는 20대가 대학생이 되는 비율이 현저하게 높아지면서 엘리트라는 상징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경제적인 접근으로는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더 이상 대학이 경쟁의 무풍지대가 아니라 가장 가혹한 경쟁의 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대학생이 한국 정치의 주역이 되는 시대는 저물어 갔다고 볼 수 있겠는데, 여기서 “중앙정치에 간섭하던 대학생들이 왜 자신들의 문제를 이슈로 하는 정치적 조직을 결성하는데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해진다.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원론적인 차원에선 다시 ‘소용돌이의 정치’라는 개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즉 우리는 중앙정치와 생활세계의 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경험적 학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학생들로서는 자신들의 문제가 바로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말해보자. 2000년 이후 소위 ‘등록금 투쟁’이 운동권에서도 이슈로 등장했다. 하지만 운동권들은 이것을 정치문제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개 운동권 정파들은 그것을 ‘복지 공약’으로 생각했고, 복지 공약으로 학생들의 인심을 얻은 후 총학 집권에 성공하여 우리 정파의 정치 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식으로 사고했다. 학생운동이 퇴조하고 있던 그 시점에서 아마도 등록금 문제는 전체 학생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단 하나의 문제였을 것이다. 각 대학에서 공동으로 대응을 하고, 각 학교와 협상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 차원으로 문제를 가져가 학자금 대출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슈를 제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때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그것은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어디까지나 사후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적인 차원에서 20대 문제라는 것이 제기된 것은 사실상 <88만원 세대>의 출판 이후 부터이기 때문이다. 학생정치조직(학정조)의 쇠퇴기에 학생들은 이념의 시대가 저 멀리 날아감을 아쉬워하거나, 더 이상 학생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야 했다. 그러한 두 개의 감상 사이에서 학정조는 꾸준히 쇠퇴했다. 외양간이 헐리는 것을 잠자코 보고만 있었는데, 나중에야 그 안에 소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격이다.

한편으로는 대학교 중심 운동이 가져온 고유한 폐해도 있다. 한참 안티조선 운동을 할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안티조선 우리모두 사이트 내의 청년우리모두라는 공간에서 20대 청년들이 모였다. 그때는 학생운동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조금씩 만날 수 있었다. 가령 대학교에 가지 못하고 페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청년같은 이들을. 하지만 ‘운동’을 위해서 우리는 대학별로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각 대학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대학 안티조선 모임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미묘한 비율로 섞여 있던 그 모임에서, 연세대의 연고전 축제에 은근슬쩍 편승해 안티조선 문화제라는 것을 개최했고, 그 여세(?)를 몰아 전국 대학생 조선일보 반대모임이란 것을 만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 활동의 효용은 거기서 끝이었다. 아마도 그 활동의 의의는 ‘기자회견을 했다’는 것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 모임에 나오지 않게 되었음을 깨달아야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운 부분이다. 조직력의 동원과 정치적인 공정성이라는 것이 충돌할 수 있는 가치임을 깨닫게 한다.

학생 운동을 하거나, 학생 신분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다가 정치적 단체에 가입을 하여 활동한 사례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비록 전반적인 20대가 그들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정치현장에서 경력을 쌓고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20대들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노사모에 참여했던 20대들, 개혁당에 참여했던 20대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참여했던 20대들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부딪혔던 문제는 제각각이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동일했다. 조직에서는 그들을 ‘일꾼’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노사모나 개혁당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의 경우 오히려 상대적으로 활발한 토론문화를 가졌으나 조직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조직을 잘 알았던 학정조 출신의 민주노동당 대학생들의 경우, 조직의 의사에 자신의 생각을 맡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건조하게 말한다면 참여한 20대가 절대적인 숫자로 많지 않기 때문에 윗세대들에게 지분을 요구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 ‘젊은 여성’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젊은이들을 대의하는데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중년 남성들에게 어필하는 데 소모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과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학생 운동권, 혹은 학생 정치조직에서 20대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례별로 다르겠지만 그들은 총학 선거에서 나름대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그렇지만 평균적인 20대들이 정치적인 접근이나 연대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방식 자체에 대해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가치지향이 아니라, 어떤 집단이나 어떤 연대의식이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가치지향을 품고 다른 이들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손해보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이 인식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조직의 가입을 권유한다는 것은 곱셈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이에게 인수분해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 학생 운동 조직이 ‘88만원 세대’의 미래에 돌파구를 가져오리라는 희망이 들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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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 Blue Sky

2008/02/15 11:36 2008/02/15 11:36

몇 일간의 술자리(?)와 고민에서 얻어진 나 자신의 사고의 결과를 적고자 한다.

먼저 이번 민주노동당의 사태들은 "자주파"냐 "평등파"냐의 정파간의 대립으로 보는건 다소 무리가 있다. 평등파에서 그런대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다함께"가 비대위안을 반대하고 있었고, 자주파들의 많은 이 들중에서도 비대위안에 대해 부분적 지지 혹은 전체적 지지를 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실로 정파적 대립이 아니라, 의견의 대립이었다고 보는게 맞다.

특히나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의 "일심회"문제에 대한 비대위안에 부결에 대해 여기저기 환호성이 터져나온 것에 대해 진짜 어이 없는 일이라 여기저기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런 꼴불견에 대해 그 사람들을 전부가 자주파라고 얘기되어지는데, 일부 분당파도 같은 환호를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일심회건의 부결을 원해서 그 기쁨을 주체 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전적으로 부결을 원했던 세력도 있었겠지만, 또한 그로인한 결과가 자신의 세력에게 도움이 되는 이들도 존재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세력에 도움가는 데로만 행동하는 이들을 우리는 패권주의세력이라고 부른다. 그런 세력들의 창궐과 이번 일심회 건의 핵심은 "패권주의 세력"과 "반패권주의 세력"간의 대립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다만 혼란속에서 문제의 핵심이 교묘히 가려져있다는데 있다.

그렇다고 실체조차 명확치 않으나, 선거때마다 뭉치는 속칭 "자주파",들에게도 이번 문제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가 얘기하듯 그들이 다수 세력을 구성하고 있다면, 그 만큼 다른 소수세력을 감싸안고 그들에게서 조차 신임과 신뢰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다수파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어찌보면 지금까지의 이런 문제의 핵심에 이런 문제에 대한 다수파들의 외면이 존재했었다. 말로만 '구존동이'일뿐 매번 실력행사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패권주의라는 각인을 준 것또한 "자주파"가 아닌가?

특히나 자신들의 세력에 대한 구분조차 없이 넓게 넓게 '우리'라는 터울로 자기 비판과 자기 분화를 잊었던 "자주파(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자주파인지..?)"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기가 아닐듯 싶다. (비대위에서는 정파 등록제를 하자고 하는데, 구분조차 안되는 자주파를 어떻게 정파를 등록한다는지...-_-)

일심회사건은 진짜 민주노동당의 변혁과 혁신의 핵심사항은 아니었다. 북에 대한 입장차가 다른 것을 당내에 있던 대부분 당원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지 않았는가? 특히나 비대위가 이 건을 전면에 배치하고, 배수진을 침으로써 당혁신의 핵심의 문제를 비껴가고, 패권주의 세력들이 더욱더 활개를 치게 만든 것도 그들의 책임이다.

또한 평당원들에게 다양한 고민의 지점을 제시하고, 협의에 따른 해결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하게 강요한 만든 비대위의 책임은 막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벌써 이렇게 된 상황에서 시간을 꺼꾸로 돌릴수 없는 것이고, 최대한 지금의 상황에서 위의 평가에 따른 나의 고민의 결정은 다음과 같다.

1. 우리의 과제는 분명 민주노동당의 변혁과 혁신에 있었다. 당의 변혁과 혁신의 그 첫번째 문제는 "평당원들과 당 중앙조직간의 소통의 문제"이다. 자주파, 평등파의 갈등이 진정 각각 지역위에서까지 첨예한가? 다소 지역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평당원들은 그런 문제를 각자의 지역에서 슬기롭게 해결하고, 대처하고 있다. 이런 평당원들에 좋은 예는 당원의견 그룹에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당중앙과 지역간의 괴리와 평당원들이 당 주요문제에 대해 소외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2. 두번째 문제는 자주파들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다. 그게 의도적이던 의도적이 아니던. 다수정파에 소외던 세력들이 당내에서 분화를 하게 된 계기를 만든 주 원인인 다수 세력의 반성은 필수이다. 좌파 패권주의 세력이 분화를 적극적으로 시사를 했고, 이런 당내 소요에 절망을 느낀 많은 당원들이 탈당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은 세력들의 변혁과 혁신의 증거들이 명확히 보여야 할것이다.
특히 김창현씨등 당 혼란에 책임있는 자주파 당직자들은 이선, 삼선으로 후퇴하길 바란다.

3. 자주파들의 비판과 반성은 물론 배타적 지지를 하고 있는 단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배차적 지지를 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결과적으로 그들의 몇가지 발언이 더욱더 사건을 악화시키는 일은 그들이 원하지 않을더라도 패권주의적 작태라고 욕먹을 수 있다. 특히나 비대위 건에 대한 "한청"의 공개적 반대의 의견(기자회견)은 한청 구성원들에게 한번이라도 의견을 듣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대표단체라고 할지라도, 중요사안에 대해 단독으로 성명서를 내는 것 또한 비판되어져야 한다.
( 특히나 이번 공동선언 실천연대의 뜸금없는 성명서는 이런 예중에서는 최고였다고 생각되어진다. 제발 그들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자발적으로 철회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니면 닥치고 지지만 하시던가... 개그를 하고 싶은건지... 진짜 이번기회로 당신들은 나의 동지가 아님을 확신했다. )

그런 이유로 탈당을 뒤로 미룬다. 그와 동시에 청년회에 다음을 건의한다.

1. 이번 민주노동당에 관한 청년회의 입장을 표시하는게 어떨까 한다. 청년회도 배타적 지지입장에서의 내부의 의견을 정리해서 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2. 또한 한청의 위와 같은 행위에 항의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위와 같은 행동들을 위해 청년회원간의 토론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끗...이후 생각나는데로 업데이트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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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 Blue Sky

2008/02/10 15:18 2008/02/10 15:18